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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4 오후 4:5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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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여권 받는다

여권 위·변조를 원천적으로 방지하고 국제규격에 맞추기 위해 외교통상부가 지난달 30일부터 도입한 첨단여권의 신청과 발급이 적체되면서 민원인들이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 심지어 민원처리를 위한 대기순번표를 판매하는 '신종사업'도 생겼다.

새 여권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권장하는 규격에 맞춘 것으로 위·변조를 막는 각종 첨단 요소를 구비했고, 예전 여권보다 기계판독률이 높아 출입국 절차에서 겪는 불편함을 줄였다. 유효기간이 10년으로 늘어 5년마다 연장처리를 해야하는 번거로움도 없앴다.

그러나 이렇게 편리해진 여권을 발급받으려면 신청할 때 구청에서 몇시간씩 기다리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 발급에도 시간이 많이 걸려 민원인들의 큰 불만을 사고 있다.

21일 오후 2시쯤 찾아간 서울 종로구청 여권과. 여권발급 신청을 위해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20분 동안 '오늘은 여권발급 신청이 안 된다'는 안내를 받고 돌아간 사람이 20명 가량이나 됐다.

종로구청 여권과에서는 오전 9시 업무시작과 동시에 민원인들에게 번호표를 배부한다. 하루 통상 350개의 번호표가 나간다. 번호표 배부 뒤 오는 민원인들은 돌려보낸다. 번호표를 받은 사람들도 사무실 안팎에서 기다리며 자기 차례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급하게 여권을 처리해야 하는 사람들은 여권과 업무가 시작되기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형편이다. 한 안내직원에 따르면 요즘은 여권과 업무가 시작되기 전인 아침 8시부터 20~30명 정도가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오늘 하루는 여권신청에 투자하기로 했어요"

창구에서 여권발급 신청서를 접수시키고 있던 지모씨(여·35)는 이날 오전 10시 종로구청에 와서 5시간 정도 기다려 신청서를 접수한 경우이다.

지씨는 "어제는 오후 2시에 구로구청으로 갔는데 번호표가 없어 헛걸음을 했다, 그래서 오늘은 종로구청으로 왔다"며 "출국일이 5일인데 여권 나오는 데 1주일 이상 걸리고 비자 발급받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너무 빠듯해 다른 일 다 제쳐놓고 오늘 하루는 여권신청에 투자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구청 측이 선착순으로 대기순번표를 나눠주지만 기다려야 하는 불편을 해결하지는 못했다.

종로구청 인근 직장을 다니고 있는 이모(50)씨는 "오전 10시 30분에 와서 번호표를 받고 다시 사무실로 갔다가 오후 1시쯤 '내 차례가 다 됐겠다' 싶어 나왔더니 아직도 차례가 오지 않았다"며 "차례가 지나가면 접수를 못할까 봐 어디 가지도 못하고 계속 기다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발급신청 적체 때문에 짜증나는 것은 민원인들만이 아니었다. 창구에서 여권신청서 접수 업무를 보던 한 구청 직원은 "(여권 발급방식이) 바뀌기 전에는 오후 6시가 되면 일이 다 끝났는데, 요즘은 저녁 8시까지 일한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여행객들의 여권신청을 대행해주는 여행사들도 불만이 높았다. 종로구청 인근에 있는 한 여행사 직원은 "여권이 늦게 나와 아예 출발을 못한 고객도 있다"며 "예전의 경우 한가한 구청에선 3일이면 여권이 나왔는데 이젠 10일 정도는 잡아야 해서 15일 정도 여유 있지 않으면 아예 여권신청 대행접수를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번호표 자체가 '돈'이 되는 현상도 생겼다. 아침 일찍 나와 대기순번표를 받아뒀다가 늦게 온 민원인들에게 번호표를 파는 '신종사업'이 생긴 것. 한 민원인은 "번호표가 없어 돌아가려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번호표를 판다길래 2만원을 주고 샀다"고 말했다.

여권 발급에 7~10일... 컴퓨터 인식오류, 느린 신원조회

▲ 발급방식에 따라 새로 바뀐 여권신청서 양식. 붉은 테두리 안을 특히 주의해 써야한다.

종전 방식으로는 접수 후 여권수령까지 2~3일 걸렸지만 새 방식으로는 7~10일까지 기다려야 여권이 나온다. 여권신청이 왜 이렇게 더디어졌을까.

새 여권을 발급박으려면 여권신청서(사진 포함) 스캐닝과 전산입력, 신원조회 등에만 종전방식의 2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마저 컴퓨터의 인식 오류가 잦고 발급처리량이 적은데다가 인쇄불량도 발생한다.

신청인이 새로 바뀐 방식의 여권발급 신청서를 작성해 접수하면 컴퓨터가 기재내용을 읽게 된다. 그러나 컴퓨터는 사람이 쓴 글씨를 100%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다. 서모씨의 경우 컴퓨터가 자신의 이름을 '서둉툇'으로 잘못 인식했다. 그러다 보니 접수 담당자들은 컴퓨터가 인식한 내용과 서류 기재내용을 대조하며 틀리게 인식한 내용을 일일이 고치느라 시간을 허비한다.

사진 규격도 까다롭다. 발급기가 인식 못하는 사진이나 국제민간항공기구에서 정한 기준에 어긋나는 사진을 붙여 제출하면 '처음부터 다시'다.

이렇게 서류가 접수된 다음에는 외교통상부 전산망을 통해 신청자 신원을 조회하는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이 과정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지만 외교통상부 전산망에 이상이 생겨 발급신청이 지연되거나 중단된 사례도 몇번 있었다. 지난 20일 종로구청에서는 외교부 전산망 장애로 여권신청접수를 중단하고 번호표를 받은 200여명의 민원인을 돌려보냈다.

"접수와 신원조회 과정이 이상없이 진행되면 10분 정도 걸리지만 신청서를 잘못 썼거나 신원조회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20~30분 정도 걸린다"는 게 고철수 종로구청 여권1과장의 설명이다.

발급기가 여권을 찍어내는 것도 오래 걸린다. 사진을 여권에 전사하고 각종 첨단 보안장치를 집어넣다 보니, 사진을 붙이고 코팅을 하던 예전 방식보다 많은 시간이 들어 발급적체를 가중시키고 있다.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예전엔 신청서류만 내고 돌아가면 됐다. 그러나 이제는 민원인이 서류를 접수하고 신원조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불편까지 생겼다.

"비수기에도 처리량 감당못해... 인원·장비 확충해야"

종로구청에서는 현재 10개 창구에서 여권 신청서를 접수하고 여권 발급기 6대가 가동되고 있다.

고 과장은 "발급방식 변경 전에는 하루 1200~1300건의 신청서를 접수했는데 지금은 800~900건 정도로 줄었다"며 "비수기임에도 수요를 절대적으로 감당못하고 있는 걸 감안한다면 인력과 장비의 확충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여권대란' 사태에 대해 외교통상부 여권과 민병철 외무관은 21일 저녁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바뀐 시스템이 느리다는 지적이 많아 서버 2대 중 1대에 대해 개선작업을 해왔고, 20일 저녁부터 가동시켰다"며 "시스템 성능개선 작업을 계속할 계획이고, 전체적인 여권발급업무 적체에 대해서도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